💙 '이광재와 5분 산책' 서른세 번째 이야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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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를 알면서 지켜보는 고통’과 ‘예상보다 큰 실패를 받아들이는 고통’을 모두 경험한 한 주였습니다.
수요일 새벽 엑스포 결과를 기다리며 <서울의 봄>을 봤습니다. 참담하더군요. 12.12 쿠데타 실화를 다룬 작품이니 결말을 각오하고 있었지만, 정해진 비극으로 치닫는 과정이 참 고통스러웠습니다.
막이 오른 시점 이후엔 더 끔찍한 일들이 벌어졌음을 우린 압니다. “현실에서의 승리도 중요하지만, 역사에서 승자가 되어야 한다”라는 신념을 잊지 말아야겠습니다.
극장에서 나선 후 엑스포 유치 결과를 봤습니다. 예상보다 큰 표 차에 충격이었지요. 특히 부산 시민들께서 크게 실망하셨습니다. 깊은 위로를 전합니다.
겨울바람이 춥습니다. 서울의 봄과 부산의 봄은 실패로 기록됐습니다. 하지만 꿈을 잃지 맙시다. 전진과 후퇴를 거듭하며 나아가는 것이 인간의 역사이고, 이 역사에서 교훈을 찾아 끊임없이 발걸음을 내딛읍시다.
결국, 봄은 반드시 올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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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같이 식사합시다> 톺아보기
고되고 때론 아팠지만, 그리운 나날들
- 새우 라면 & 용광로 김치찌개 & 도리뱅뱅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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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에서 학교 다닐 때는 봉산동에서 자취 생활을 했다. 자취방 바로 옆에 기찻길이 있었다. 책을 읽다 바람 쐬러 밖에 나와 철길을 따라 걷곤 했다. 걷다 보면 깜깜한 어둠을 가르며 열차가 달려왔다. 환한 조명 불빛에 하루살이들이 떼를 지어 춤추었다. 그 광경이 묘하게 대조되어 기억에 남아 있다. 힘차게 달리는 기차. 흐물흐물 춤추는 하루살이 떼. 하루살이처럼 살지는 말아야겠다, 열차처럼 기백 있게 나아가야겠다. 어린 마음에 그런 다짐을 하곤 했다. (p.3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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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2년 겨울, 대학 입학시험을 마치고 친구 두 명과 여행을 떠났다. 부산을 거쳐 마산으로, 다시 충무를 거쳐 광주에 갔다. 광주에서 ‘큰 사건’이 일어났을 때 그토록 달려가고 싶었던 현장에 2년 뒤 도착했다. 전남대와 조선대를 둘러보았다. 전남도청 앞 광장, 충장로, 금남로도 가보았다. 이 거리가 피로 물들었을 것을 생각하니 끔찍하고 가슴이 아렸다. 여행에 들뜬 기분이 싹 달아났다. 광주에서 죽은 영혼들의 뜻을 잊지 않겠다, 그들의 한을 풀어주겠다고 다짐했다. (p.3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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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교조적인 이념과는 체질상 어울리지 않았다. 친구들은 지하 이념 서클 같은 곳에 들어가 사상인가 이론인가 하는 것을 공부한다는데, 나는 거부감을 느꼈다. 이른바 ‘먹물’처럼 느껴졌다고나 할까. 생활 속에 직접 실천하는 것에 더 관심이 많았다. 야학에 들어갔다. 당시 학생 운동권에서 운영하는 야학은 사실상 ‘의식화 학교’였다. 겉으로는 배움의 기회를 놓친 노동자들에게 국어, 영어, 수학을 가르친다고 하지만 물론 그런 것을 가르치면서도 좀 ‘깨어 있다’ 싶은 노동자를 만나면 곧장 이념 서적을 건네면서 의식화 교육을 하는 식이었다. 나는 그런 방법에도 거부감이 들었다. (p.36-3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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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이, 인생이, 이 라면 같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큰 틀에서는 차이가 없지만 세부 항목에 들어가면 달라지는, 일반적으로는 사람들이 ‘요리’라고 생각하지 않지만 다들 나름의 조리법이 있고 사연이 있는 요리 ‘라면’. 각자 사연을 안고 살아가면서도 교감하고 소통하는 것이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이고 세상이라고 생각한다. (p.4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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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한 잠자리처럼 사람을 고통스럽게 만드는 일도 없다. 하늘 아래 내 몸을 누일 수 있는 한 평 공간이 없다는 사실에 절망하게 된다. 지금도 주택 문제로 고민하는 청년들을 만날 때마다 고생이 짐작되어 가슴이 아프다. (p.51-5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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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이라는 신분을 숨기고 위장 취업을 하기는 했지만 나름대로는 작업에 열중했다. 며칠 일하다 보니 작업이 재미있었다. 붉은 쇳물이 튼튼한 수도 밸브로 다시 태어나는 과정을 지켜보는 일은 신비롭기까지 했다. 최고로 깨끗하고 말끔한 밸브를 만들기 위해 부지런히 그라인더를 돌렸다.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호기심, 어머니에게 이어받은 낙천적인 성격 탓일 것이다. (p.54-5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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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김치찌개를 먹을 때면 부산 주물 공장에서 먹었던 용광로 김치찌개가 생각난다. 그동안 인생을 살며 숱한 김치찌개를 먹었지만 그때 김치찌개보다 맛있는 김치찌개는 없었던 것 같다. 김치찌개에 도시락을 먹으면서, 도시락 뚜껑에 소주를 부었다. “건배” 하며 들이켜던 검댕이 묻은 얼굴들이 떠오른다. 어떤 요리든 누구랑 어디서 어떻게 먹었느냐가 중요한 것 같다. (p.5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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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 운동이 힘들어서 떠나는 친구나 후배도 많았다. 자신의 선택에 따라 떠나는 것이니 억지로 붙잡을 생각은 하지 않았다. 시위에 참여할 것을 강요하지도 않았다. 감옥을 선택하든 안방을 선택하든 어차피 인생은 자기가 사랑하는 방식에 따르는 것이다. 각자 나름의 인생을 산다. 세상과 무관하게 살겠다는 사람을 굳이 세상 안으로 끌고 올 이유는 없다고 생각했다. (p.7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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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자라던 시절은 그래도 그나마 ‘개천에서 용 나는’ 것이 가능하던 시절이었다. 자본주의가 완전히 고착되지 않았고, 가난한 우리 집이 중산층으로 빠르게 올라섰던 것에서 알 수 있듯, 신분 상승의 사다리가 남아 있던 시절이었다. ‘노력’이라는 용어를 감히 사용할 수 있는 시절이었다. 노력하면 되는 시절이었다. 그런데 지금 젊은이들에게 “노력하라” 말하면 모욕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출발선이 다르기에 노력해도 안 되는 세상이 되었다. 청년들에게 미안하고 송구할 따름이다. (p.8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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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낚시’라고 표현했지만 사실은 그물을 던지는 투망법인데, 한 번 던지면 물고기가 한 망태기씩 잡혔다. 오대산에서 발원한 여만 냇가는 밑바닥 자갈까지 햇볕에 반사해 반짝일 정도로 맑고 투명하기로 유명하다. 꺽지, 피라미 같은 물고기들이 잔뜩 헤엄치며 다녔다. 잡은 물고기는 양동이에 담았다. 자전거 손잡이에 양동이를 걸고, 뒷좌석에는 나를 태우고, 천천히 오솔길 따라 자전거 끌며 아버지는 집으로 돌아갔다. 그럴 때마다 검붉은 노을을 배경 삼아 아버지는 큰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광재야, 훌륭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p.90-9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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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훌륭한 사람이 되어라"라는
어머니, 아버지의 뜻에 부응하고 있는 걸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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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과 추억이 얽힌 음식은 많다. 함께했던 시간이 20년은 넘으니 그와 함께했던 식사만 족히 수백 번은 될 것이다. 함께 먹은 음식의 종류만 수백 종은 헤아린다. 그 가운데 유난히 기억에 남는 음식이 있다. 도리뱅뱅이.
도리뱅뱅이라는 음식이 무엇인지, 이름조차 들어본 적 없는 독자도 꽤 많을 것이다. 이름이 특이하고 이국적으로 느껴지기까지 하지만 그리 거창한 요리는 아니다. 피라미를 튀기고 구운 요리다. 프라이팬 같은 넓은 냄비에 물고기 수십 마리를 뱅글뱅글 돌리듯 배열해 식탁 위에 내놓는다. 그래서 도리뱅뱅이라고 부른다. (p.9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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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 대통령이 국회의원이던 시절에 강원도 정선에 함께 출장을 갔던 적이 있다. 도리뱅뱅이를 그때 처음 드셨는데, 맛을 잊지 못하셨던 같다. 대통령이라도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일이 많다. 음식조차 마음대로 먹지 못한다. 그런 모습이 애잔해, 옥천 쪽으로 업무차 가는 직원이 있으면 돌아오는 길에 도리뱅뱅이를 좀 사달라고 부탁했다. 대통령의 갈증과 스트레스를 풀어드릴 수 있는 비서진의 작은 선물에 불과했다. 무척 흡족해하시면서 “막걸리도 있으면 좋을 텐데” 하고 거절할 수 없는 미소를 짓곤 하셨다. (p.93-9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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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원재 한국체육대학교 총장님과
국회와 MOU로 맺은 인연! |
이기흥 대한체육회 회장님과
대한민국의 모든 선수들, 파이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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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창 동계올림픽은 정치 인생에서 가장 뿌듯한 기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평창 지역구 의원으로서 올림픽 유치 구상을 이야기했을 때 “설마 되겠어?”라는 반응이 많았지요. 그러나 대한민국은 꿈을 이뤄냈습니다.
스포츠는 인간 정신의 가장 위대한 부분을 담고 있습니다. 공정한 룰에 입각한 건강한 경쟁, 스스로와의 정신적 사투, 한계를 뛰어넘는 의지, 그리고 화합과 공존. 치열한 승부 끝에 휘슬이 울리면, 아군과 적의 경계는 사라지고 상대와 맞잡은 손에서 존중이 오가지요.
정치도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국회사무처와 한국체육대학교 MOU로 인연을 맺은 문원재 총장님, 대한체육회 이기흥 회장님 두 분께 응원의 마음을 전했습니다.
대한민국 모든 선수가 다치지 않고 자신의 꿈을 당당히 이뤄나가면 좋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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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저우 아시안게임 양궁 금메달리스트 임시현 선수도 국회를 찾아주셨습니다
국회는 스포츠인들이 꿈을 마음껏 펼치도록 지원하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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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리 교사 송기택입니다. 지난번 광재책방에서 만났던 <나를 깨우는 인문학 수업> 저자입니다. 오랜만에 소식 전합니다. 사무총장님의 소중한 책 구매해서 잘 읽고 있습니다. 참. 고마운 책입니다. 그리고, 재밌습니다. 좋습니다. 저는 오늘도 교육의 현장에서 교육의 본질을 지키면서 성실히 잘 지내보겠습니다. 사무총장님께서도 정치의 공간에서 정치의 본질을 지키면서 건강하게 잘 지내세요. 늘 사무총장님을 지지하고 응원합니다. 마음 속으로 사무총장님의 정치의 본질을 바라보는 그 시선에 동의하고 응원하는 저같은 사람들이 많다는 것 잊지마시고요. 오늘 춥습니다. 오늘도 건강하세요.
- 송기택 <나를 깨우는 인문학 수업> 저자, 윤리 교사 -
총장님, 같이 식사합시다. 출판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메뉴가 다양하여 듣고 싶고, 먹고 싶은 메뉴가 많은 것 같습니다. 저도 함께 같이 식사하고 싶습니다.
- 양00님 -
한 권의 책이 한 사람의 인생을 바꾸듯, 총장님의 책 한 권이 누군가의 삶의 허기를 채울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책 제목이 아주 인상적입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말 표현에 유독 감정과 생각을 담아 표현하지요. 진지드셨습니까, 밥 한 끼 먹자, 밥맛 없어, 밥줄 끊겼다, 밥상머리 교육..... 등등. 의식주 중에 '식'에 해당하는 표현이 가장 많지 않을까 싶어요. 그만큼 우리나라 사람들은 밥, 먹는 것에 진심을 담는 거겠지요. 이번 책을 통해 사람들이 <같이 식사합시다>란 말을 많이 주고받으면 좋겠습니다. 혼밥, 혼식 시대에 '같이 식사'한다는 것의 가치가 더 크게 들려오니까요.
- 서00님 -
책을 출간했다는 이메일을 읽고 바로 30권을 주문했습니다. 직원들에게 나눠 주고 읽어보라고 하려고요. "먹고 사는 일에는 좌도 없고 우도 없다. 보수도 없고 진보도 없다. 오늘을 살고 내일을 준비해야 한다는 인간의 지극한 본능이 있을 따름이다. 그것이 정치다." 정말 옳은 말씀인데 이런 정치가 왜 한국에서는 이토록 어려울까요? 총장님이라면 잘 해내실 것으로 믿습니다. 늘 응원합니다. 총장님!!!
- 이00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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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eskjwj@naver.com 서울시 영등포구 의사당대로 1 국회의사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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